허리 나간 개발자의 재활 노트

🗓 2022-11-21

Image by Arpit from Pixabay

아직 젊고 건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허리가 나갔습니다.

디스크라고 불리는 노화의 대표적인 질병 추간판 탈출증입니다.

허리가 종종 아팠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엉망진창이었던 자세를 생각한다면 그래도 지금까지 잘 버텨준 것 같습니다. 코딩 작업과 같은 집중이 필요한 작업을 할 때면 어느덧 자세는 거의 누워있는 자세가 됐었고 뒤늦게 자세를 고쳐잡아도 금방 뒤로 자빠지길 반복했습니다. 몇 해전 목통증으로 우연히 척추부터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던 적이 있습니다.
"목이 거의 일자목이며 척추도 C자 모양이어야 하는데 1자를 넘어 반대쪽으로 휘어있습니다. 관리 안 하면 목 디스크 허리디스크 옵니다"
의사의 경고를 듣고도 한 몇 달 조심하다가 그대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나름 운동을 꾸준히 해왔고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터라 크게 와닿질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허리를 굽히다가 살짝 왔던 허리 통증을 무시하고 헬스장에 갔습니다. 허리 통증을 참으면서 러닝머신을 뛰는데 점점 통증이 강해졌습니다. "이따위로 핑계 삼지 말자"라는 진짜 XX같은 중2병 같은 마인드로 참고 달리다가 "뿌직" 하는 소리가 들린 것과 같은 통증과 함께 제대로 설 수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뿌직" 하는 소리가 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경험한 총체적인 느낌은 그랬습니다. 그렇게 제대로 설 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아 서기 힘드니 밴치프레스나 하자"라는 생각으로 누워서 한 개도 못 들고 일어나질 못해 누운 채로 5분은 땀만 삐질삐질 흘렸던 것 같습니다. 어이가 없죠.

허리 쪽에 긴 칼 하나가 들어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한 달 동안 누워도 아프고 서도 아프고 앉아도 아픈 상태라 우울하게 보냈습니다. 운동은커녕 제대로 걷지도 못했고 잠도 설치며 회사 업무만 겨우겨우 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재택근무였기에 가능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통증이 있었고 걷기 힘들었습니다. 큰 병원에 가서 MRI를 찍어봤더니 제가 봐도 뭐가 튀어나온 게 보이더군요 2번 3번 디스크가 뭔 바람이 났는지 집을 나갔습니다.
"디스크가 아주 제대로 터졌어요. 이건 수술해야 해요."
의사가 말했습니다. 워낙 운동을 좋아하고 운동으로 활력을 많이 얻는 저에게는 "앞으로 쇠질은 못합니다" 라고 들렸습니다. 멍하더군요. 고통을 참으며 무식하게 러닝머신을 뛴 제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습니다. 그때 운동만 안 했어도 이런 사단은 없었을 텐데요. 터질 디스크는 언젠간 터진다고 합니다만 그 시기가 당겨진 거죠.

지금까진 호들갑스러운 디스크 진단 경험담이었습니다. 저 말고도 다른 개발자분들 중에도 분명 목이던 허리던 터질듯한 디스크를 방치하고 있으신 분들이 분명 계실 겁니다. 흔한 질병이기도 하고요. 일단 허리와 목은 뻐근하거나 통증이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조만간 뭔가 문제가 생길 거라는 신호입니다.

사람의 생활패턴이란 신체적인 로직은 생각 없이 가만두면 정말 점점 더 안 좋은 쪽으로 바뀌어갑니다. 이런 안 좋은 로직은 우리의 몸에 버그를 남기게 되고 바꾸지 않는다면 언젠가 기능을 못 하게 됩니다. 제 좋지 않은 자세라는 생활 패턴이 디스크를 터트린 거죠. 코드와 달리 우리 몸은 다시 만들 수가 없어요. 내 코드를 리팩터링 하듯 우리의 생활패턴도 끊임없이 리팩터링 해야 합니다. 한 시간마다 한 번씩 스트레칭이 몸에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요? 식후 10분 20분 산책도 그렇고요. 충분한 수면시간 확보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식, 과음은 말할 것도 없죠. 생각해 보면 너무도 많은 전문가들이 이야기하고 있고 스스로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왜 바꾸질 못할까요. 꼭 잃고 나서야 후회합니다.

기술적인 부분을 떠나서 근본적으로 우리가 개발을 잘하는 비결은 몸이 불편함 없이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체력이 없어 무기력하고 조금만 앉아있어도 목이나 허리가 아프다면 개발을 잘하고 싶어도 통증이 신경 쓰이고 스트레스를 받아 인내심에 한계가 옵니다. 사람의 인내심은 마치 게임 캐릭터의 에너지처럼 매일 사용할 수 있는 양이 정해져있다고 하죠. 그래서 인내심을 애먼 데서 사용하고 나면 정작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에 에너지를 쏟을 수 없어 지처 버립니다. 몸이 아프다면 개발하는 데 사용되는 에너지가 두 배, 세 배로 사용되겠죠. 개발자라면 매번 마주하게 되는 "이게 왜 안되지?"라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에너지가 넘칠 때면 "그럼 이렇게 해볼까?"라는 긍정적인 액션으로 이어지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이런거나 만드는 이따위 회사 안다닌다." 로 와전될 수 있습니다. 이 고도의 정신적인 노동은 아무리 그 어떤 것으로 고귀하게 포장해도 결국 이 몸뚱어리의 상태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겁니다.

항상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내일의 에너지를 오늘 끌어쓰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고 과식을 하지 않으며 맵고 짜게 먹지 않고 야식을 먹지 않으며 음식 조절을 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고 산책을 하면서 몸을 관리하고 회사일과 쓸데없는 걱정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으며 무엇보다 건강검진 결과가 내지르는 비명을 무시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이미 알고 있던 이런 건강 수칙들을 이제라도 다 지킬 수 있을까요?

내 업무의 기술을 하나 더 배우는 것보다, 성과 하나 더 만드는 것보다, 우선해야 할 것들입니다. 이따위 직업 언제든지 바뀔 수 있지만 몸은 그렇지 않잖아요. 아픈 몸 앞에선 소프트 스킬도 하드 스킬도 아무짝에 쓸모없습니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하반신 마비가 올 수도 있습니다."
의사의 말은 무거웠지만 여기저기서 디스크 선배님들의 말씀을 들어보니 그렇다고 수술도 답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걷기도 힘든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걷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이왕 터진 거 정말 걷지 못하게 되면 수술하자라는 생각으로 걷기 운동부터 시작했습니다.

걷기는 조심스럽게 허리가 주는 통증과 감각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속도와 거리를 조절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루가 다르게 통증이 완화되더군요. 허리 통증으로 구부정했던 자세에서 걷기 운동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돼 똑바른 자세로 걸을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조금씩 거리를 늘려 5km를 통증 없이 걸을 수 있게 됐고 조금 욕심을 내서 살살 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50m도 뛰기 힘들더군요. 하지만 이런 통증도 매일 조금씩 속도를 조절하며 거리를 늘려가니 갈수록 나아집니다. 100m, 200m 하루하루 조금씩 늘리다가 지금은 2km를 걷고 3~4km를 뜁니다. 조만간 5km 러닝으로 습관화 할 생각입니다. 영원할것 같던 통증이 운동을 시작한지 한 달 조금 넘어 거의 없어졌고 불편한 느낌만 조금 남았습니다. 아마 이 느낌은 계속 있을 것 같습니다.

일주일 전부터는 다시 쇠질도 시작했습니다. 기존보다 훨씬 더 자세와 반동에 민감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제 데드리프트같이 허리에 무리를 주는 몇 가지 운동은 다시 하긴 힘들겠지만 대안으로 자극을 줄 수 있는 운동은 많습니다. 이젠 쇠질은 못하겠구나 생각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이 정도가 어딥니까. 아프다고 계속 움직이지 않았다면 아마 아직도 고통 속에 살았을 것 같습니다. 수술을 했을 수도 있겠네요.

누구나 나가는 허리 디스크 하나 나갔는데 생각이 참 많습니다. 이 글이 저와 같은 디스크 초보자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예비 환자(?)분들의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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